“1일 1 논쟁? 부족하죠.
화이트보드 다섯 개 준비해주세요.”
- 노타 유럽 법인 리서치팀 PM 염슬기 박사님 인터뷰
연구, 리서치라는 말은 왠지 수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책상에 앉아, 조용히 자기의 주제에만 골몰해 있을 것만 같은 느낌. MBTI로 치면 E(외향적)보다는 I(내향적) 타입일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노타의 리서치팀은 다릅니다. 재택근무가 가장 어울릴 것 같지만 사무실에 가장 많이 출근하고, 가장 많이 앉아 있을 것 같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서서 토론합니다. 온 정신이 연구를 향해 있고, 온몸이 연구를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노타의 리서치 팀은 베를린 유럽법인에 있는데요. 노타의 리서치 팀은 그 도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닮은 듯합니다.
사무실에서도 자리에 앉아 있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화이트보드를 까맣게 채웠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팀원들끼리 열띤 토론이 종일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흡사 영화 ‘굿윌헌팅’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 오피스가 보안 문제로 주말과 야간에 출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가장 슬퍼하던 사람, 팀원과 만나 ‘싸우는 것’을 가장 공들여 한다는 노타의 리서치팀 프로젝트 매니저, 유럽법인의 염슬기 박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리서치 팀은 늘 싸운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팀 내 불화설인가요?
일단 주먹으로 치고받고 싸우진 않습니다. 그런데 싸우는 것은 사실입니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를 따지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저희는 리서치를 통해서 논문을 내고, 그 논문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특허를 내는 등 실질적인 성과까지 이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늘 심사받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뾰족하게 싸우지 않으면, 결국 논문이 통과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팀의 성과는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절대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아요. 논리와 체계를 가지고 얼마나 잘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연구의 깊이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논의합니다.
처음에는 ‘굿윌헌팅’처럼 멋지게 싸움을 시작한다.
‘화이트보드, 너를 족치고 말겠어’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웠다 지우고, 채웠다 지우고를 반복한다.
화이트보드 벌써 3개째이다. 몰입하는 자는 어디서 어떻게 봐도 멋지다.
밖의 풍경은 유럽이지만, 안의 풍경은 AI 모델 컴프레션뿐이다.
너무 오래 서 있는 것도 일이다. 편안하게 싸우기(?) 위해 바닥에도 잘 앉는다.
지금은 무슨 주제로 싸우고 계신가요?
지금까지는 프루닝(prunning)이라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말 그대로, ‘가지치기(prunning)’를 해서 경량화를 하는 모델 컴프레션(model compression) 방법의 일종입니다. 프루닝 방식이 지금까지의 모델 경량화 방법 중 가장 성능이 좋습니다. 속도도 좋고, 성능도 좋아서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썼고,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근데 다음 연구 주제를 선정할 때, 똑같은 주제로 가게 되면, 저희가 저희의 논문을 까고 시작합니다. 그러면 학계에서 의미 갖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인용되고, 입에 오르내려야 더 발전이 있죠.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까이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주제를 찾다가 신경망 아키텍처 탐색(Neural Architecture Search, NAS)이라는 분야를 택했습니다. 보통 ‘나스’라고 얘기하는데 상당히 도전적인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모델 경량화 중에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다른 방법론들은 그냥 연구실에서 컴퓨터 한 대 있으면 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입니다. GPU 하나 정도 있으면, 금방금방 돌려보고 결과를 뽑을 수가 있어요. 당장 결과를 보고 수정할 수 있고 빠르게 대응해볼 수 있죠. 그런데 나스는 설계만 몇 달이 걸립니다. 그래서 도전적이기도 하고 리스키한 분야입니다.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팀이군요.
노타라는 회사에서 리서치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노타에서는 사업개발팀, 전략팀, 마케팅, 운영팀이 한편에 있다면, HAI, ITS, NetsPresso팀 등 개발팀이 다른 한 편에 있습니다. 그리고 리서치 팀은 이 두 팀의 뒷방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 프로덕트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을 개발팀이 진행하고, 이분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시장에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업개발팀을 비롯한 다른 팀들의 역할입니다.
저희 팀은 ‘뒷방’이라고 표현했지만, 다른 의미에서 숲 전체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노타의 다양한 팀과 소통하면서, 연구적으로 저희가 깊이 있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끈질기게 파헤쳐서 원천적인 기술을 학문적으로 밸리데이션시키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당장 돈을 벌어오는 역할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기술 연구를 통해 노타 숲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경량화 연구의 최신 동향 등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트렌드세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희는 한 가지에 꽂혀서 계속 그것만 보는 역할이고, 개발자 분들도 논문을 보시면서 실제 적용하는 것에 바로바로 적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트렌드는 거의 함께 파악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같은 논문을 보더라도 개발팀과 리서치팀이 보는 관점은 다릅니다. 개발팀은 ‘이 연구에 소개된 기술이 성능이 좋은지 안 좋은지, 우리 프로덕트에 이런 연구가 실제 적용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본다면, 리서치팀은 ‘이 방식이 좋다는데, 이게 왜 좋은지, 이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어떤 걸 쓰길래 좋은지’ 해석을 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노타의 리서치 팀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특히 다른 회사의 리서치팀과 다른 매력을 말씀해주신다면요?
‘리서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네?
보통 한국의 기업에서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리서치팀을 애초에 거의 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당장의 눈에 보이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서치를 통해 나온 논문조차도 사업적인 관점에서 ‘이게 돈이 돼?’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연구를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말 유능한 사람 한두 명 정도로 가성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어렵습니다.
리서치팀을 만든 노타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거기서 노타의 차별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명수님은 리서치를 해본 경험이 있으시죠. 그래서 리서치의 가치를 높게 둡니다. 이게 다른 CEO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냥 사업적인 마인드만 있다면, 리서치팀을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다. 소위 리서치에서 나왔던 기술들이 3년 정도는 지나야 실제 개발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서치팀이 당장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고,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기술 가치를 높여주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기술적인 깊이, 여기에 논문의 기술에 관한 특허까지 있다면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타는 그런 의미에서 숲을 키울 줄 아는 기업이고, 저희는 그 숲을 잘 가꾸어 나가는 숲지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숲을 천천히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실제 리서치팀의 성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제가 입사하면서 리서치 팀이 생겼고, 그게 2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논문을 5편 발표했습니다. 회사의 네임밸류를 높일 수 있도록 이 발표된 논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외부 활동을 했고요. 특허 출원도 2개를 진행했습니다.
매력이 넘치는 노타의 리서치팀에 합류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중요한 자질이 뭘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제 최소한의 인원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 명의 인재를 뽑는 것도 다른 팀보다 훨씬 신중한 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 한 편을 쓰는 전 과정을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이 굉장히 긴데, 그 긴 호흡 전체를 끈질기게 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는 첫 번째 산, ‘좋은 결과’라는 두 번째 산, 그리고 심사자로부터 그 논문을 통과(accept) 받는 세 번째 산을 모두 넘어봐야 합니다. 실제로 이 세 산을 모두 넘어 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 주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로 소통하고 싸울 수 있는 자질이 있다면 좋습니다. 좋은 인재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